미래에서 왔다는 누군지도 모를 녀석이 집 안에 들어앉아 나가질 않았다. 나이트윙와 로빈, 그리고 비스트 보이가 본부에 있을 때 나타났다는 녀석은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라고 했다. 시끄럽고, 산만하고 작은 녀석은 빠르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영 저스티스로 굴러들어온 임펄스가 치는 사고의 강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나이트윙의 미간에 하나 둘 깊은 주름이 내려앉았다.
“저기…나이트윙? 내가 왜요?”
대뜸 눈앞에 들이밀어진 낯선 갈색 물체를 두 손으로 쭉 밀어내며 뒷걸음질을 했다.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두 손을 잡고 붕붕 소리가 날정도로 흔드는 녀석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누가 제일 익숙하냐고 물어봤더니 블루비틀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에 데려왔다.”
“전 저 녀석 누군지 모르는데요.”
“…응?”
“저 쪽에서 일방적으로 아는 거 아닌가요. 전 정말…….”
“아 저기 블루? 블루? 블루? 블루?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물론 날 모를 수도 있어. 지금부터 알면 되는 거 아닐까?”
“…….”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엉겨 붙은 둘을 바라보던 나이트윙이 무선 통신기를 켰다. 물론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비록 통신기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은 역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예? 뭐라고요? 알겠습니다. 나이트윙 아웃,”
여기서 한 번 태클을 걸었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바로 얼굴을 들이밀고 정신을 쏙 빼놓는 녀석 때문에 슬슬 멀어지는 나이트윙에게 말을 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나이트윙이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보일 때는 이미 늦어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사라진 나이트윙은 간 곳이 없었고, 황량한 공터엔 시끄러운 갈색 생물체만 남아있었다. 조용한 장소에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두 팔을 꽉 잡고 있는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입을 막았다.
“입 좀 다물어봐. 시끄러워.”
“으어흐어.”
“말 하지 말라고! 야, 간지러워!”
끊임없이 웅얼대는 입술이 손바닥에 붙어올 때마다 하이메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저히 입을 다물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가까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입에서 손이 떨어지자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하이메를 바라보던 임펄스가 쪼르르 옆에 와서 앉더니 또다시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시크릿 아이덴티티가 탄로날까봐 잔뜩 신경을 쏟고 있는데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녀석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근데…어…이름이 뭐라고 했지?”
“응? 바트 앨런. 물론 저 쪽에선 날 임펄스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 근데 둘 다 상관없어.”
“저기…시크릿 아이덴티티는?”
“그게 뭐가 중요해? 하. 정말 이 시대는 쓸데없는 걸 너무 신경 쓴다니까. 안 그래? 친구.”
언제부터 우리가 친구였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들을 만한 녀석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 먼저 항복한 쪽은 하이메였다. 벤치에 앉아 부산스럽게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임펄스는 조금만 바라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래. 우리 통성명은 제대로 안했지만 친구라고 치고, 시크릿 아이덴티티 오픈했다고 치자.”
“응? 블루. 왜?”
“일단…일단 말이야. 너 혹시 다른 옷은 없냐?”
“왜?”
“그렇게 입고 다니면 튀잖아. 미래에선 뭐 그다지 상관없다 하더라도 여긴 아냐. 알았어?”
“…딱히 가져온 거 없는데?”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넙죽넙죽 대답하는 얼굴을 보니 갑자기 서러워졌다. 시간 여행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이렇게 대책이 없을 수가. 한참 말을 고르던 하이메가 바트의 손을 덥석 잡고 일으켰다. 순순히 따라오는 녀석을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